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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랑은 왜』―어떻게 감정이 끝나는지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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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REDIT GIANT 작성일19년04월29일 16:14 조회25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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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랑은 왜』―어떻게 감정이 끝나는지에 관하여


    여기서 뭐 하는 거니?”

    노래가 멈췄다.

    흘러흘러 여기까지 왔어요. 내 몸이란 하냥 가벼워 어디든 갈 수 있어요. 나는 많은 것을 알아요. 당신이 글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죽은 여자 때문에 애를 삭인다는 것도 알아요. 몇 년 전 그 여자와 이 방에서 몸을 섞었다는 것도 알고 함께 장어구이를 먹어치운 것도 알아요. 장어를 먹으며 그 여자의 살점으로 생각한 것도 알아요. 덜컥 죽어버린 그 여자를 여태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그 여자 때문에 치른 관재수로 지난해를 허송한 것도 알아요.”

    김영하, 『아랑은 왜』에서.

    허리가 뻐근하다. 격한 정사가 필요한 날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A를 만나는 날이면 언제나 한계선까지 몰아 붙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나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이다. 내가 사용하는 단어들에 직관적인 어려움을 느끼고, 그것을 되묻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으며 쾌락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종류의 천박한 말들도 용납하였다. 그는 단어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민감함을 알지 못하였고, 그 보다는 직각적(直覺的)인 행동들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내가 읽어나가는 수많은 소설들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말을 입밖에 낸 적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애독가로서, 특히 소설을 탐닉하는 몽상가로서,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자신 있게 권할만한 소설이 있는가 하면, 오직 그들에게만 권하고 싶은 것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나와 비슷한 종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할만한 이들에게도 섣불리 권하기 어려운 책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차라리 고전이라면 교양을 운운하며 들먹일 수라도 있지, 아직 죽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은 무시 받기 십상팔구이다. 김영하의 『아랑은 왜』는 확실히 세 번째 유형에 속한다. 무려 국문학을 전공한 각기 다른 세 명의 남자(심지어는 그들 모두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에게로부터 거절 당했으니 웬만한 피력은 다했지 않나 싶다. 그들의 평은 별로 놀랍지 않게도 일관적인데 이는 나중에 이 책을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던질 수 있는 적절한 멘트가 돼주었다. “솔직히 서두는 너무 지루하고, 국문학이든 국어교육이든 책 깨나 본다는 사람들도 힘들어했어. 그런데 읽다 보니 남자로서 양심에 찔리는 이야기가 흥미롭고 기분 나쁘다고들 하더라. 별로 추천하지는 않는데 나는 정말 좋아해.” 아마 A에게는 절대로 권할 일이 없을 것 같다.

    구성자체는 굉장히 참신하다. 소설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구비문학인 아랑전설을 재해석하는 동시에(아랑전설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지면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으니 모르면 검색해보도록.) 주인공 아랑을 가상으로 설정한 현대의 인물 영주와 접목하여 교차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전반적으로는 이야기를 창작하는 과정자체를 작가의 입장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메타픽션적인 성격도 있다. 다시 말하면 소설 창작에 관심이 없는 독자라면 볼 이유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하는 이유는 액자식으로 삽입되어 있는 영주와 박의 이야기 때문이다. 사실 영주와 박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아랑전설을 끌어들였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아랑전설을 재해석 하는 과정 자체보다 훨씬 임팩트가 강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와 같은 영화들에 대해서 얘기할 때처럼 “XX XX초부터~XX XX초 까지라고 설명할 수는 없으니 참으로 애석하기 그지 없다. 그래서 굳이 페이지를 부르자면 54p, 147p, 189p…….

    내 머리를 감겨주는 여자와 지금의 내 헤어스타일을 만들어준 여자와 둘러앉아 삼겹살이라니, 소주라니. 그는 웃었다. 그랬다. 그들은 그의 머리를 만질 수 있는, 그 주변에서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김영하, 『아랑은 왜』에서

    변변찮은 삼십 대 미혼남 박은 단골 미용실의 디자이너와 그녀의 스태프인 영주와 함께 삼겹살을 먹게 되고, 그 술자리를 계기로 영주를 만나게 되고 급기야 동거를 하기에 이른다. 이제 겨우 스물 안팎의 나이일 법한 영주는 집이 필요하였고, 박은 외로웠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이런 파렴치한 인간을 보았나라며 윤리적인 잣대에서 박을 힐난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 것 같다. 그러나 소설인 만큼 지극히 정상적이고 정의적인 우리의 윤리적 잣대는 잠시 집어넣도록 하자.

    무엇이 특별할 것 없는 이 서사에 집중하게 하는가? 아마 이 책에서 박과 영주에 관한 이야기만 따로 도려내서 엮는다면 아마 오십 페이지 정도의 짧은 단편소설 분량이 나올 것이다. 독자를 매료하는 것은 박과 영주의 나이차이도, 완벽한 허구에 가까운 그들의 동거생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그들의 감정싸움도 아닌 영주를 대하는 박의 태도이다. 박을 매료한 것은 영주였는가, 아니면 그가 원하는 대로 이끌어 가기 쉬웠던 영주의 상황이었던가? 박은 영주가 죽고 나서야 영주를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오직 지나가 버린 것들에 대해서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무력한 사람.

    차라리 원조교제가 낫겠어. 이게 뭐야. 내가 강아지야? 얼러주면 꼬리치고 밥 주면 받아먹고, 그런 거야? 나도 내 인생이 있는 거 아냐?” (중략) 그들이 떠난 후에 박은 가벼운 어지러움을 느낀다. ‘이게 뭐야? 내가 강아지야? 차라리 원조교제가 낫겠어!’ 영주가 바락바락 질러대던 소리가 다시 귓가에 쟁쟁거렸다. , 그것이었다. 그때까지 그가 영주를 한 마리 애완동물처럼 생각해왔다는 것 그건 부인할 수가 없다. 돌이켜보면 정말 그랬던 것 같았다. 그녀도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고 있고 그래서 당연히 경찰의 보호를 받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라고는 한 번도 여겨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에게 있어서 그녀는 애견센터에서 신용카드로 대금을 지불하고 받아온 푸들과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잠시 혼란을 느꼈던 것이다. 영주가 사라졌다고 형사가 나타나다니.

    김영하, 『아랑은 왜』 에서.

    집착은 그것만 단독으로 존재할 때 더할 나위 없이 퇴폐적이다. 가장 바닥에서부터 병든 감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상대방을 향한, 혹은 자신을 향한 학대에 중독된 것처럼 집착을 즐긴다. 박은 영주의 친구들이 다녀간 후 냉동고에 꽁꽁 얼은 콘돔이(그것도 사용한.) 들어있는 것을 목격한다. 그는 영주를 추궁한다. 그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사랑이 어그러진 것에 대한 응징이다. 그는 영주가 자신을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상관없다는 투로 이야기한다. 이 모든 것이 금새 깨져버릴 백일몽이라는 것을 그도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말들을 입밖에 냄으로써네가 밖에서 뭘 하든지 상관하지 않겠지만 내 집에서는 안돼모든 것이 깨진다. 물론 그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영주는 또래의 다른 남자를 만나서 섹스를 할 수 있었고, 박은 다른 여자를 사서 성욕을 해결할 수도 있었다. 본질적으로 그러한 행동에 대한 간섭이 통용되지 않는 사이라는 것을 둘 모두가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벌어질 사단이었다. 그는 아마 그 콘돔의 주인이 영주의 다른 남자가 아님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의처증은 말 그대로 의심에 지나지 않았고, 환상이었다. 그는 영주가 아니라 자신을 견딜 수 없었고, 더 정확하게 이야기 하자면 앞으로 진짜 그런 일이 생긴 후의 자신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영주를 살해하였다.

    A는 집착이 의심에서 기인한다고 말하였다. 그 의심이 잘못인지 아닌지는 그것의 진위 여부가 밝혀졌을 때 알 수 있지 않겠냐고 말하였다. 그것은 너무 위험부담이 큰 것이 아닌가요, 그런 의심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관계가 병들었다는 증거인데, 굳이 그것을 눈으로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나요. 그것은 내가 A를 대하는 태도였다. 어차피 그렇게 된 일인 이상 굳이 확인하면서까지 나를 무너뜨릴 이유가 없었다. 습관처럼 다른 여자와 자도 괜찮다고,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하라고 말하는 나를 어떻게 대할 줄 몰랐던 그는 결국 나를 만나면서 다른 사람과 잤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추궁하거나, 미워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아니다.

    박이 은밀한 욕망이자 죄의식의 상징인 아랑을 만나는 것은 그가 영주에게 가지고 있었던 감정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 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영주의 물건들과 머리카락을 태우면서 그녀가 죽었다는 것을 실감하고, “좋다고 느낀다. 그것은 집착의 종말이다. 사실 영주는 자살하였다. 그러나 그는 모종의 의식을 치름으로써 다시 한 번 그녀를 죽인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감정은 해소된다. 정말로 사람을 죽이지 않더라도 이러한 종류의 의식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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